[Column of the week] 삐걱대는 EU, 헬무트 콜에게서 배워라

입력 2017-06-29 17:20  

통일 달성한 '뚝심의 콜'
동독의 경제수준 낮은데도 서독통화와 1대1 교환 강행
통일 혼란속 동독 생산성 높여

유로존에 주는 교훈
문제는 환율이 아니라 제도
통화 약세에 기대고픈 유혹, 장기적으로 경쟁력 도움 안돼

마르셀 프라츠셔 < 독일경제연구원(DIW) 원장 >



[ 김현석 기자 ]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는 옳았다.

이달 초 콜 전 총리의 서거는 그의 유산(독일 통일)과 관련된 뜨거운 논쟁을 부활시켰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천재로 평가돼 왔지만 경제정책에서는 실패했다는 견해가 많았다. 이제 그런 견해를 재평가할 때다. 콜은 많은 전문적인 경제학자들이 인정하는 것 이상으로 똑똑했던 사람이다.

콜 전 총리가 뛰어난 정치가이자 나쁜 경제학자라는 주장은 밀접하게 얽혀 있다. 그의 주요 정치 목표는 공산주의 붕괴 이후 독일을 통일하는 것, 그리고 유럽을 ‘유로’라는 새로운 단일통화 체제로 통합하는 것이었다.

1990년 독일 총선에서 콜 전 총리의 정적이었던 오스카 라 폰테인과 많은 독일 학자들은 즉각적인 독일 통일에 반대했다. 그들은 동독 경제가 서독과 너무 다르다며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동독 기업들은 서독에서는 결코 팔기 어려운 제품을 만들었고, 양 지역 간 시장의 룰도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콜 전 총리는 이 같은 의견을 무시했다. 그는 통일이 동서독 간 경제적 일치의 결과가 아니라 원인이 돼야 한다고 봤다. 동독의 가장 큰 희망은 서독의 강력한 시장경제 체제를 재빨리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게 그의 경제적 통찰이었다.

콜 전 총리가 옳았다는 건 역사에 의해 입증됐다. 동독의 마르크화를 1 대 1로 서독 마르크화로 바꿔준 건 아마도 그의 통일정책 중 가장 논란이 돼 온 것일 게다. 대부분의 독일 경제학자들은 1 대 1 통화 교환이 상대가격을 왜곡하고 동독의 경쟁력을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독일 중앙은행(분데스방크)의 칼 오토 폴 총재는 콜의 이 같은 결정에 항의해 사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따져보면 동독 경제는 너무나 서독과 동떨어져 있어 어떤 가격 수준에서도 경쟁력이 없었다. 만약 10 대 1 환율을 적용했다 하더라도 서독인 어느 누구도 동독 자동차회사 트라반트(Trabant)에서 ‘트라비(Trabi)’ 차를 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콜 전 총리는 다른 접근법을 취했다. 그의 1 대 1 통화 교환은 동독인들이 통일 이후 수년간 시장경제를 처음 겪을 때 경험한 높은 실업률과 낮은 소득에서 생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콜 전 총리는 틀리지 않았다. 그는 “몇 년 만에 꽃이 만발한 풍경”을 약속하는 등 너무 낙관적인 사람이었다. 콜 전 총리가 총리를 맡았던 동안 노동과 경제정책 등에선 잘못을 범했다. 세금을 인상하고 복지 제도를 확대함으로써 기업들의 투자를 방해하고 독일의 국제 경쟁력을 떨어뜨렸다.

하지만 동독과 서독의 경제적 융합은 주목할 만한 성공작이었다. 오늘날 동독 지역의 1인당 평균 생산성은 서독 지역의 약 80%에 달한다. 이는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남부 지역과 북부 지역에서 관찰되는 생산성 격차보다 훨씬 적은 차이다.

독일 통일의 경제적 성공은 서독의 제도(민주주의 지배구조와 이를 실현할 행정조직, 경제 참여자에게 빠른 적응을 요구하는 환율)를 동독 지역에 즉각 적용한 덕분이었다. 이를 통해 동독인들은 점진적으로 내생적 경쟁력을 갖게 됐다. 콜은 동독이 준비될 때까지 서독의 제도를 적용하는 걸 유예한다면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는 오늘날 유럽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제도는 상대적 가격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직면한 문제는 각국이 유로화 통합에 의해 적정한 환율을 누리지 못해서 발생한 게 아니다. 신뢰할 만한 체제와 조정 메커니즘이 결여돼 있어서다. 1990년 동독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나 이탈리아의 문제는 그들의 민주주의 체제와 정치·경제 구조가 허술하고 엉망이어서다. 약한 통화는 경쟁력과 번영을 만들어 내기 위한 장기적인 전략이 아니다.

유로존 국가들은 강하고 믿을 만한 유로화를 채택함으로써 그동안 많은 이익을 얻어 왔다. 대부분의 회원국은 이전보다 더 유리한 금융 조건을 누렸고 안정된 물가를 창출했다. 그리고 무역은 확대됐고 더 넓은 시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졌다. 물론 독일 등 개방된 경제를 채택한 국가가 이 같은 이점을 더 많이 누렸다.

유로존 회원국들은 독일 통일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정치·경제 체제를 개혁하고 완벽한 통화동맹을 이뤄내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위해 단일한 자본·금융시장 체제를 완성해야 하며, 위험을 나누고 공동 규칙을 지키는 재정통합을 이뤄내야 한다. 유럽 각국이 주권을 공유하면 유럽은 궁극적으로 더욱 강해지고 어려움도 쉽게 극복할 수 있다. 이는 1990년 독일에서 목격했듯이, 모두가 더 나은 결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콜 전 총리는 독일 통일과 유럽 통합뿐만 아니라 경제에 대해서도 선지자였다. 그는 유로화를 독일 통일의 대가로 생각하지 않고, 강하고 통일된 유럽을 만들기 위한 필수조건으로 생각했다. 콜은 자신의 꿈이 독일에서 실현되는 걸 목격했다. 그의 꿈은 아직 유럽에선 미진하지만 얼마든지 실현될 수 있다.

THE WALL STREET JOURNAL·한경 독점제휴

원제=Helmut Kohl Was Right

정리=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

마르셀 프라츠셔 < 독일경제연구원(DIW) 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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